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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감상 13

'시바 베이비(Shiva Baby)', 유대교 장례식에서 느껴지는 우리네 명절 공포증

역시 영화는 젊은 여성이 만든 영화가 최고다. 조금 더 친절히 말하자면 젊은 여성에 대한 영화는 젊은 여성이 만든 영화가 최고다. 95년생 캐나다인 작가이자 감독인 엠마 셀리그먼(Emma Seligman)의 첫 장편 데뷔작 '시바 베이비(Shiva Baby)'가 그렇다. 어떤 사건을 직접 겪고 지켜본 사람이 만든 영화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결이 다르다. 소재가 가공되는 과정이 짧아서 그런지 무언가가 덧씌워지지 않은 듯한 생생함이 있다. 특히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그것이 영화가 되는 시점 사이의 텀이 짧을 때 터져 나오는 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여성이 주인공인 장편영화에서 그런 기운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대 초반인 여성 감독의 장편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흔치..

지인의 감상 2021.10.07

Maggie Rogers - Light On (La Blogothèque – Live in Paris)

https://youtu.be/fVLDxmjeyVo 문득 생각나서 주기적으로 보는 영상. 가사와 음악의 흐름을 너무나 잘 파악했고 단순하고 직관적인 아이디어로 그것들을 극대화한 영상이다. 이 영상에 서려 있는 마음들이 느껴져서 볼 때마다 뭉클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항상 이런 것들을 나눌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이런 걸 만든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지인의 감상 2021.10.07

국내 방송사의 품을 벗어난 드라마는 어떤 모습을 할 수 있는가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에게 보이는 세상이 나에겐 10%도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정유미의 씨발소리는 참 듣기 좋았으며, 남주혁의 얼굴은 ‘얼굴이 개연성’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배우로서 타고난 재능인 것 같다. 작게 표현해도 쉽게 역할을 흡입한다. 주연 외에 다른 역할들도 캐스팅이 좋았다. 살아 있는 새로운 얼굴들 속에서 한국영화/방송계의 또다른 미래를 보았다. 국내 방송사의 품을 벗어난 한국 드라마는 이런 모습을 할 수 있구나. 최근 문학계에 흐르는 물결이 이렇게 생각보다 빨리 스크린까지 닿는 구나. 나는 좋은 시대에 많은 사람에게 빚지며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의 감상 2021.09.27

오마이걸의 운명 같은 'Destiny'는 필연적인 결과다. ‘다섯번째 계절’

종종 새삼스럽게 한국어와 한국의 멋이 얼마나 뻐렁치는지 호들갑을 떨게 될 때가 있다. 오마이걸의 노래를 들으면서 알 수 없는 울컥함을 느낀다면 공감할 것이다. 다섯번째 계절 역시 그런 곡이다. 뭔지 모를 이상한 향수를 자아내고, 조선시대의 10대 여성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그려지는 것만 같다. https://youtu.be/X72HgBrMccc 피리, 태평소 같은 관악기 빠방하게 넣고 편곡해도 너무 좋을 것 같다. 다섯번째 계절을 듣다 보면 오마이걸이 러블리즈의 'Destiny(나의 지구)'를 발돋음 삼아 정상에 오른 건 필연적인 결과라는 걸 알 수 있다. 자신들이 해온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분명히 파악한 사람은 결국 기회를 잡는다. (S.E.S.를 좋아했다면 오마이걸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어. 정확히..

지인의 감상 2021.08.29

'더 와일즈(The Wilds)', 여성 크리에이터들이 어떻게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2020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화제작 '더 와일즈(The Wilds)'. '더 와일즈'는 공개되자마자 단숨에 시즌2 제작을 확정지었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에 쏟아지는 기사와 밈 때문에 등 떠밀리듯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결제했다. 나 역시도 모든 에피소드를 단숨에 해치우고 시즌 전체를 다시 돌려 봤을 정도였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없는 듯 있어요 언제부턴가 청소년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가 많아져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이 마음은 내가 어릴 적에 미디어로부터 비춰볼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얼마나 한정적이었느냐에 대한 분함에서 비롯된다. 최근 몇 년간 10대 여성이 주인공인 TV시리즈가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 점은 확실히 OTT 스트리밍 서비스의 순기능이다. 넷플릭스, 왓챠, 아마존 프라임 ..

지인의 감상 2021.07.07

'시트 크릭 패밀리(Schitt's Creek)', 코로나 시대의 눅눅함을 녹여 버릴 코미디

지난해 에미 어워드(Emmy Awards)를 휩쓸었던 시트 크릭 패밀리(Schitt's Creek). 특히 'David'역을 연기한 다니엘 레비(Daniel Levy)는 연기, 제작, 각본, 연출 등 받을 수 있는 상이라곤 다 수상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시상식을 챙겨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다니엘 레비가 정말 끊임없이 호명됐다. 계속 나와서 나중에는 할 말도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광경을 보고 나니 괜스레 이 작품을 안 보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이 피어 올랐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매우 있어요 그러고선 '시트 크릭 패밀리'를 일주일만에 끝내버렸다. 왜 이 코미디시리즈가 시즌 피날레에,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는지 이해가 갔다. 정말 무해하고 안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였다. ..

지인의 감상 2021.07.05

'PEN15', 누군가의 가장 사적인 회고는 우리를 위한 치유가 된다

hulu(훌루)의 오리지널 시리즈 'PEN15'을 처음 보고 느낀 감정은 '내가 이걸 봐도 괜찮은 걸까?' 싶은 수준의 당혹감이었다. 이 정도로 이상하리만큼 솔직하고 노골적이고 자기고백적인 코미디 시리즈가 있었을까.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중학교에, 누가 봐도 성인이지만 중학생인 Maya와 Anna가, 2010년대에 태어났을 법한 10대 배우들과 극을 풀어나가는 기이한 설정. Maya와 Anna라는 이름은 주연 배우인 'Maya Erskine'과 'Anna Konkle'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심지어 그 두 명이 프로그램 크리에이터이자 각본 및 제작에도 참여했다. 에피소드 첫 화가 끝난 후 크레딧에 쉴새없이 떠다니는 'Maya Erskine'과 'Anna Konkle'을 보고선 한 대 맞은 듯한 ..

지인의 감상 2021.06.20

우주소녀(WJSN)의 'Pantomime', 두고두고 회자될 고고한 수록곡

작년에 발매된 우주소녀의 EP 'Neverland'에 수록된 'Pantomime'. 뒤늦게서야 정말 멋진 곡을 발견했다. 이런 곡이 K팝을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좋아해본 사람은 없게 만드는 거 같다. 개인적으로 SM엔터테인먼트의 실험적인 사운드를 좋아하는데, 우주소녀의 'Pantomime'에선 내가 f(x)에게 기대했을 법한 소리들이 종종 들린다. 끊임없이 즐거움을 선사하는 구성과 변주, 치밀한 음악이론을 바탕으로 한 코드진행과 부지런함, 순식간에 여러 곳을 오가는 색채의 분위기, 마치 고전연극 같은 가사와 결을 맞추듯 클래식 음악이 떠오르는 음계와 박자 위를 수놓는 사운드. 이 모든 요소가 '이지 리스닝'과는 정 반대에 있는 지점을 향해 달려 나가며, 아무리 수많은 볼거리로 무장한 K팝이라..

지인의 감상 2021.06.04

에스파(aespa)의 'Next Level', 이수만선생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십쇼

에스파의 신곡이 나왔다. 사운드 미쳤다. 진짜 'next level'이다. 이 정도로 사운드에 공을 들이니까 sm이 계속 smp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있는 거다. 사운드가 너무 좋아서 영상이 눈에 안 들어올 정도였다. 누가 들어도 sm에서 나온 노래인데, 그 아이덴티티를 고대로 살리면서 안주하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 멋지다. 며칠 전에 영화 비스무레한 영상이 떴을 땐 뭘 하고 싶은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이런 음악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모든 게 납득 가능하다. 에스파의 'Next Level'은 sm이 정말 혼을 갈고 준비한, 여지껏 쌓아온 내공이 모두 집약된 곡이다. 멤버 개개인의 역량을 잘 살릴 수 있는 곡이냐는 건 의문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운드가 모든 걸 압도한다. K팝에는..

지인의 감상 20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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