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에미 어워드(Emmy Awards)를 휩쓸었던 시트 크릭 패밀리(Schitt's Creek). 특히 'David'역을 연기한 다니엘 레비(Daniel Levy)는 연기, 제작, 각본, 연출 등 받을 수 있는 상이라곤 다 수상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시상식을 챙겨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다니엘 레비가 정말 끊임없이 호명됐다. 계속 나와서 나중에는 할 말도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광경을 보고 나니 괜스레 이 작품을 안 보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이 피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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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선 '시트 크릭 패밀리'를 일주일만에 끝내버렸다. 왜 이 코미디시리즈가 시즌 피날레에,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는지 이해가 갔다. 정말 무해하고 안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였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루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가족들이 다같이 즐길 수 있는 코미디. ‘부통령이 필요해(Veep)’ 같은 미국식 블랙 코미디와는 극 반대편에 서있는, 'So Canadian'한 시트콤. 4인 가족이라는 전통적인 관습에서 출발하지만 호모포비아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결혼하는 두 남성의 모습으로 막을 내리는 '시트 크릭 패밀리'. 이 역시도 이상하게 보수적이지만 진보적인 캐나다의 모습과 꼭 닮아있다.
'시트 크릭 패밀리'를 마지막까지 주욱 달리다 보면 마치 나 또한 캐릭터들처럼 성장한 듯한 착각이 든다. 사실 내가 한 거라곤 같은 자리에 앉아 그들의 변화를 지켜본 것 뿐인데도 말이다. '시트 크릭 패밀리'는 가장 안전하고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방법으로 보는 사람을 자신들의 세상으로 이끈다. 그 점이 '시트 크릭 패밀리'를 다른 코미디와 크게 구분 지을 수 있는 부분이다.
캐릭터들의 성장 뿐만 아니라, 시즌을 거듭할수록 '시트 크릭 패밀리'라는 작품 자체가 모든 면에서 성장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시즌1에서는 한정된 장소에서만 흘러가던 내용이 갈수록 팽창한다. 눈에 띄게 늘어나는 예산, 그에 따라 좋아지는 연출, 이야기가 손을 뻗는 범위, 점점 넓어지는 캐릭터들의 세계. 이 모든 것들이 아우러져서 '시트 크릭 패밀리'라는 티비 시리즈 자체가 너무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워지는 요상한 순간이 있다. 이 순간이 코로나 시대를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트 크릭 패밀리'와 사랑에 빠졌던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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