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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노트/지인 앤 토닉 인 토론토 9

루시 데이커스(Lucy Dacus) 토론토 공연

밖에서 기다리다가 난생 처음으로 머리에 비둘기 똥을 맞았고 그걸 까먹고 계속 손으로 머리 쓸어 넘기다가 식겁했고 부랴부랴 예매했던 티켓은 와보니 현장판매가 더 저렴했지만 2만 5천원에 루시 데이커스 공연의 콧구멍석을 차지할 수 있다는 건 신나고 짜릿한 일이다. 'My Mother & I'랑 'Night shift'랑 마지막 미발매곡(Thumbs)이 정말 좋았다. 목소리가 참 포곤하고 슬프고 눅눅하고 묘하다. 공연을 본 후에 알게 된 사실은 'Lee's palace'가 내가 아는 분의 한국계 캐나다인 동창이 만든 곳이였다는 거다. Lee's palace는 토론토를 배경으로 한 영화 스콧 필그림에서 고대로 나오는 그 공연장이다. 공연 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루시 데이커스 공연의 잔상이 너무 짙었다. 이렇게 여..

토론토 아일랜드

토론토 아일랜드 대체 뭘까? 매일 그림 같은 하늘을 맞이하면서도 페리를 타고 호수만 건너면 토론토의 중심부에 도착하는 작은 섬. 20분 사이에 여우, 올빼미, 비버가 사는 자연친화적인 섬에서 메이저 리그와 NBA가 열리는 대도시로 이동이 가능한 곳. 가장 현대적인 천국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천지창조, 지구의 탄생 같은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하늘이 빼곡했다. 포토샵 레이어처럼 층마다 다른 색깔과 구름이 촘촘히 쌓여 있었다.

토론토의 버스와 노란색 줄

토론토의 버스와 스트릿카 내부에는 곳곳에 노란색 줄이 걸려 있다. 빨간색 STOP 버튼이 너무 멀리 있을 때 눈 앞의 요 노란색 줄을 당기면 띵동소리와 함께 ‘정지 요청’ 표시가 뜬다. 사소하지만 승객안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장치다. 한국에선 정지버튼 때문에 쌩쌩 달리는 와중에 일어나야 했던 적이 참 많았다.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학습된 압박감 덕분에 더욱 조마조마했던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한국에서도 미리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며 안내해주시는 기사님도 꽤 계시고, 새로 설계되어 운행하는 버스는 모든 좌석에서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아 근데 솔직히 지하철은 서울이 세계 최고다. 토론토 지하철은 화장실 있는 역이 손에 꼽힌다는 걸 듣고 놀랐다. 또 버스든 지하철이든 고장도 운행정지도 잦아서..

토론토의 도서관

토론토는 도서관 시설과 시스템이 정말 잘 갖춰져 있다. 처음으로 도서관에 가서 카드를 만들 때, 의기양양하게 ‘이제 너가 살다 보면~ 토론토에 도서관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하던 직원 분의 여유와 자부심이 차고 넘치게 이해갈 만큼 그렇다. 굳이 카페에 가지 않아도 시내 곳곳에 공부하거나 작업할 만한 도서관이 즐비하다. 카페 갈 이유도 줄고(커피가 더 저렴한데도!) 장 보는 비용도 저렴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생활비 지출이 적다. (하지만 최근에 종합감기약 두 통, 코감기약 한 통에 4만원을 쓴 게 컸다.) 토론토 도서관은 대여용 음반이랑 영화, TV시리즈 DVD도 폭 넓고 다양하게 있고 도서관 계정으로 E-book이나 TV, 영화, 음악 스트리밍 대여 서비스도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굳이 넷..

한국 음식은 달고 매워

“다네!” 달다구요? 나는 한 번도 명이나물이 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매운데?” 맵다구요? 명이나물이? 그렇다. 명이나물은 달고 매운 음식이었다. 간장에 설탕을 넣어 절인 산마늘이니 달고 매운 게 당연했다. “맛있다! 한국 음식은 주로 달콤한 편이니?” 생각해보니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떠올려 보니 대체로 단 맛이 강한 음식들이었다.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을 하면서도 스스로 한국 음식을 떠올려 보며 간신히 말을 이어나가야 했다. 제 인생에 누군가가 한국 음식이 달콤하냐고 물어본 적이 없어서요. 토론토에서 살면서 새삼스레 알게된 점은 한식은 대체로 다양한 맛의 조화가 기본이라는 것이다. 단 맛, 짠 맛, 매운 맛, 신 맛의 조화가 어우러진 음식이 어디에나 널려 있어서 정작 그 음..

아임파인땡큐앤유?

"How is it going?" 오싱턴 애비뉴(Ossington Avenue)에 있는 작은 가게에 들어서니 점원이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하지만 아직도 'How are you?', 'How is it going?'은 듣기에 영 어색하고 낯간지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영어가 무섭기 이전에 도저히 답을 모르겠는 질문에 맞닥뜨린 느낌이다. 여유로운 척 'Good.' 하면 되는데 아직까진 그게 너무 어렵다. 한국에선 아무도 내 기분을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가까운 사람들이랑은 내 기분을 나누지만, 처음 본 사람이 오늘 어때? 라고 물으니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안녕하세요', '식사 하셨어요?' 같은 가장 가벼운 인사라는 걸 알지만 여전히 영 편하지가 않다. 토론토에..

니가 날 민사소송하는 꿈을 꿨어

나는 사람을 쉽게 미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전에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왠만하면 그 사람을 용서할 이유를 찾고 또 찾아낸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위해선 내 자신의 잘잘못에 대한 집요한 물음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사람을 미워하는 건 자신을 향한 깊은 의심을 거둔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나는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할 수 있다는 게 미친듯이 두렵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건 익숙하지만 남이 나를 미워하는 건 영원히 적응할 수 없는 일 같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안고 토론토에 도착한 첫 날,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꿈을 꿨다. 그리고 그 모든 미움의 중심에 은정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

토론토까지 흘러온 부산의 파도

‘난 세이수미의 복잡함이 좋아. 밝은 소리 안에 그들만의 씁쓸한 슬픔이 있거든. 난 서울에서, 강원도에서, 그리고 오늘 토론토에서 세이수미의 공연을 봤어.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정말 멋졌고 오늘은 나에게 꽤나 의미있는 날이었어.’ 오랜만에 세이수미(Say Sue Me)의 공연을 본 후 달뜬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에 흔적을 남겼다. 항상 지나친 국뽕이나 의무감에 휩싸인 애국심은 경계하려고 하는데, 토론토에서 만난 부산의 밴드를 보며 피어오르는 자랑스러움은 쉬이 누를 수가 없었다. 다양한 것이 읽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건 항상 묘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수미님의 표정이 그랬다. 아직까지 그날의 뭉글뭉글한 마음이 선명한 걸 보니 그 여운이 오랫동안 자리할 것 같다. 마야와 서투른 언어로 ..

한국인이라는 스펙트럼

토론토에 다녀오고 나서야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한국인이냐 아니냐'가 '참이냐 거짓이냐' 수준의 간단한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오히려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스펙트럼에 가까웠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한국인 혹은 한국계 캐나다인을 만날수록 내가 얼마나 국적과 정체성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해왔는지를 반성하게 됐다. 예전의 나는 아직까지도 '단일민족', '한민족' 등을 운운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컸다.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정체화하지도 않으며 한국어를 거의 못 하는 한국계 프랑스인 정치인을 ‘프랑스의 첫 한국인 정치인’이라고 칭하는 게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에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국적이 한국이 아니면 외국인이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게 쿨한 건 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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