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노트/지인 앤 토닉 인 토론토

한국인이라는 스펙트럼

jiin mia heo 2021. 9. 2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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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토에 다녀오고 나서야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한국인이냐 아니냐'가 '참이냐 거짓이냐' 수준의 간단한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오히려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스펙트럼에 가까웠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한국인 혹은 한국계 캐나다인을 만날수록 내가 얼마나 국적과 정체성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해왔는지를 반성하게 됐다.

 예전의 나는 아직까지도 '단일민족', '한민족' 등을 운운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컸다.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정체화하지도 않으며 한국어를 거의 못 하는 한국계 프랑스인 정치인을 ‘프랑스의 첫 한국인 정치인’이라고 칭하는 게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에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국적이 한국이 아니면 외국인이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게 쿨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단어 속에는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층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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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아시안 이민자 서사의 흐름과 영화 ‘미나리’

휴대폰 화면에 비친 두 노인은 또 늙어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막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 호주로 돌아온 뒤, 한국에 가 보지 못했다. 지난 설날에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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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토에서 지내면서 처음으로 눈에 보이기 시작했던 부분들이 고스란히 담긴 기사다. 내 머릿 속에서만 둥둥 떠다녔던 것들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접한다는 건 언제든 반가운 일이다.

 예전에 비해 한국계 이민자에 대한 영화나 TV시리즈가 많아진 건 무척 좋은 일이고, 관객인 나로서 감격스러운 변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다 2세대 자녀들(혹은 2세대조차 아닌 사람들)이며 진짜 1세대 이민자인 사람이 1세대 이민자를 연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소재나 캐릭터가 대상화될 수밖에 없는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한테는 그런 점들이 조금 더 눈에 띄는 게 당연한 것 같다.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 역시도 재밌게 보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었다. 극 중 영미와 상일(이름보다 'Umma'와 'Appa'가 먼저 떠오르는 것도 묘하다)은 토론토에서 산지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유이즈롱', '텔투미!' 같은 문장을 내뱉는다. 그런데도 둘만 있을 때조차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를 쓴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기이함은 본인들이 동아시아계 2세대라는 이유로 중국어 악센트를 따라하는 김치와 정의 에피소드를 보고 더 커졌다. 당시 이민자조차 되지 못 했던 나의 입장에서 그 에피소드는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아는 분이 나한테 '나도 그거 재밌게 보긴 했는데 한국인들은 괜찮대니? 인종차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물었던 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새삼스럽게도 알면 알수록 한국계 이민자와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 사이의 엄청난 벽을 느낀다. 그 벽은 정말 높고 두껍지만 그만큼 흥미롭고 복잡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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