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노트/지인 앤 토닉 인 토론토

니가 날 민사소송하는 꿈을 꿨어

jiin mia heo 2021. 9. 2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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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람을 쉽게 미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전에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왠만하면 그 사람을 용서할 이유를 찾고 또 찾아낸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위해선 내 자신의 잘잘못에 대한 집요한 물음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사람을 미워하는 건 자신을 향한 깊은 의심을 거둔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나는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할 수 있다는 게 미친듯이 두렵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건 익숙하지만 남이 나를 미워하는 건 영원히 적응할 수 없는 일 같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안고 토론토에 도착한 첫 날,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꿈을 꿨다. 그리고 그 모든 미움의 중심에 은정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온갖 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나를 경멸했다.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몰라도 큰 잘못을 저지른 건 확실했다. 그렇게 차례차례 사람들의 시선에 치이고 치이다가 겨우 꿈에서 깨어났다. 그 꿈은 내가 평생 꿨던 꿈 중에서 가장 힘겹고 충격적인 꿈이었다. 가위에 눌리고 귀신을 보던 시기나 여지껏 꿔온 여느 잔인한 꿈들보다 버티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막상 깨어나니 짙은 안도감과 용기, 혹은 난 여기서 잘 살아갈 거라는 확신 같은 것이 나를 다독였다. 작게 난 창문으로 말도 안 되는 일출이 나를 반겼고 그건 정말 얼탱이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장면을 본 나는 아무 생각없이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은정과 몇 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는지, 은정이 내 갑작스러운 전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가늠해볼 시간조차 없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니가 날 민사소송하는 꿈을 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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