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감상

'더 와일즈(The Wilds)', 여성 크리에이터들이 어떻게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jiin mia heo 2021. 7. 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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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화제작 '더 와일즈(The Wilds)'. '더 와일즈'는 공개되자마자 단숨에 시즌2 제작을 확정지었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에 쏟아지는 기사와 밈 때문에 등 떠밀리듯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결제했다. 나 역시도 모든 에피소드를 단숨에 해치우고 시즌 전체를 다시 돌려 봤을 정도였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없는 듯 있어요

 언제부턴가 청소년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가 많아져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이 마음은 내가 어릴 적에 미디어로부터 비춰볼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얼마나 한정적이었느냐에 대한 분함에서 비롯된다. 최근 몇 년간 10대 여성이 주인공인 TV시리즈가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 점은 확실히 OTT 스트리밍 서비스의 순기능이다. 넷플릭스, 왓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OTT 플랫폼이 발전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나는 내가 드라마나 TV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지만 그건 단지 선택의 폭이 좁았기 때문이었다. 자라오면서 유난히 드라마에 흥미가 없던 나는 단순히 드라마는 '챙겨보는 게 귀찮아서' 혹은 '너무 길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냥 내가 재밌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그 당시의 한국 방송사에는 없던 거였다. 지금은 밤을 새워 TV시리즈를 조지는 전사지만, 예전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놓고 '미국에서 평범한 10대 여성으로 사는 것 자체가 진짜 지옥'이라고 외치는 '더 와일즈'가 반갑고 통쾌했다.

 '더 와일즈'는 예전에 어떤 배우가 말했던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냥 캐릭터를 만들고 그 역을 여성 배우한테 줘라'의 좋은 예시인 것 같다. '더 와일즈'의 경우는 캐릭터의 성별보단 소수성에 해당하지만 맥락은 같다. '더 와일즈'의 원주민, 아시안, 흑인, 퀴어 캐릭터들은 그 속성이 인물의 전부가 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 각자의 배경서사가 탄탄한 덕에 신선한 캐릭터들이 많다. 토니는 커밍아웃이나 인종에 대한 일절 언급 없이 그냥 퀴어 원주민이고, 린은 아시안이 아니라 그냥 호주사람인 것처럼. 이런 면에서 '더 와일즈'는 여성 캐스트와 크루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어떻게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 캐릭터 구성부터 대표성이나 다양성을 하나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만든 작품과 그래도 신경 쓰는 사람의 작품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준다. 그냥 못 만든 작품은 있어도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망한 작품은 없다. 그러니 비겁하게 'PC'를 탓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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