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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은 달고 매워

“다네!” 달다구요? 나는 한 번도 명이나물이 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매운데?” 맵다구요? 명이나물이? 그렇다. 명이나물은 달고 매운 음식이었다. 간장에 설탕을 넣어 절인 산마늘이니 달고 매운 게 당연했다. “맛있다! 한국 음식은 주로 달콤한 편이니?” 생각해보니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떠올려 보니 대체로 단 맛이 강한 음식들이었다.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을 하면서도 스스로 한국 음식을 떠올려 보며 간신히 말을 이어나가야 했다. 제 인생에 누군가가 한국 음식이 달콤하냐고 물어본 적이 없어서요. 토론토에서 살면서 새삼스레 알게된 점은 한식은 대체로 다양한 맛의 조화가 기본이라는 것이다. 단 맛, 짠 맛, 매운 맛, 신 맛의 조화가 어우러진 음식이 어디에나 널려 있어서 정작 그 음..

아임파인땡큐앤유?

"How is it going?" 오싱턴 애비뉴(Ossington Avenue)에 있는 작은 가게에 들어서니 점원이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하지만 아직도 'How are you?', 'How is it going?'은 듣기에 영 어색하고 낯간지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영어가 무섭기 이전에 도저히 답을 모르겠는 질문에 맞닥뜨린 느낌이다. 여유로운 척 'Good.' 하면 되는데 아직까진 그게 너무 어렵다. 한국에선 아무도 내 기분을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가까운 사람들이랑은 내 기분을 나누지만, 처음 본 사람이 오늘 어때? 라고 물으니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안녕하세요', '식사 하셨어요?' 같은 가장 가벼운 인사라는 걸 알지만 여전히 영 편하지가 않다. 토론토에..

지구에서 둔아뿐?

“인생은 짧아. 뻔한 얘기 같지만 정말 그래. 그러니까 우린 삶을 더 넓혀 나가야 하지 않을까? 삶의 모서리를 계속해서 때리고 부딪히고 부숴야 되는 거 아닐까? 그렇게 하면 삶이 짧아도 좁지는 않게 되잖아. 그래야 덜 억울하지 않겠어? 이런 말도 우리가 우리를 젊다고 생각할 때나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야. 그걸 생각하면 삶은 정말로 짧지 않아? 그래도 날 이렇게 흘려 보낼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지인의 노트 2021.09.28

국내 방송사의 품을 벗어난 드라마는 어떤 모습을 할 수 있는가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에게 보이는 세상이 나에겐 10%도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정유미의 씨발소리는 참 듣기 좋았으며, 남주혁의 얼굴은 ‘얼굴이 개연성’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배우로서 타고난 재능인 것 같다. 작게 표현해도 쉽게 역할을 흡입한다. 주연 외에 다른 역할들도 캐스팅이 좋았다. 살아 있는 새로운 얼굴들 속에서 한국영화/방송계의 또다른 미래를 보았다. 국내 방송사의 품을 벗어난 한국 드라마는 이런 모습을 할 수 있구나. 최근 문학계에 흐르는 물결이 이렇게 생각보다 빨리 스크린까지 닿는 구나. 나는 좋은 시대에 많은 사람에게 빚지며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의 감상 2021.09.27

니가 날 민사소송하는 꿈을 꿨어

나는 사람을 쉽게 미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전에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왠만하면 그 사람을 용서할 이유를 찾고 또 찾아낸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위해선 내 자신의 잘잘못에 대한 집요한 물음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사람을 미워하는 건 자신을 향한 깊은 의심을 거둔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나는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할 수 있다는 게 미친듯이 두렵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건 익숙하지만 남이 나를 미워하는 건 영원히 적응할 수 없는 일 같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안고 토론토에 도착한 첫 날,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꿈을 꿨다. 그리고 그 모든 미움의 중심에 은정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

토론토까지 흘러온 부산의 파도

‘난 세이수미의 복잡함이 좋아. 밝은 소리 안에 그들만의 씁쓸한 슬픔이 있거든. 난 서울에서, 강원도에서, 그리고 오늘 토론토에서 세이수미의 공연을 봤어.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정말 멋졌고 오늘은 나에게 꽤나 의미있는 날이었어.’ 오랜만에 세이수미(Say Sue Me)의 공연을 본 후 달뜬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에 흔적을 남겼다. 항상 지나친 국뽕이나 의무감에 휩싸인 애국심은 경계하려고 하는데, 토론토에서 만난 부산의 밴드를 보며 피어오르는 자랑스러움은 쉬이 누를 수가 없었다. 다양한 것이 읽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건 항상 묘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수미님의 표정이 그랬다. 아직까지 그날의 뭉글뭉글한 마음이 선명한 걸 보니 그 여운이 오랫동안 자리할 것 같다. 마야와 서투른 언어로 ..

한국인이라는 스펙트럼

토론토에 다녀오고 나서야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한국인이냐 아니냐'가 '참이냐 거짓이냐' 수준의 간단한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오히려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스펙트럼에 가까웠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한국인 혹은 한국계 캐나다인을 만날수록 내가 얼마나 국적과 정체성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해왔는지를 반성하게 됐다. 예전의 나는 아직까지도 '단일민족', '한민족' 등을 운운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컸다.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정체화하지도 않으며 한국어를 거의 못 하는 한국계 프랑스인 정치인을 ‘프랑스의 첫 한국인 정치인’이라고 칭하는 게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에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국적이 한국이 아니면 외국인이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게 쿨한 건 줄 ..

이제 그만 BTS를 K팝 아이돌이라 여기지 말자

그들은 K팝 아이돌이지만 K팝 아이돌이 아니다 이제 그만 놓아주는 연습을 하자 우와 Megan Thee Stallion이랑 작업했네라고 생각하지 말자 우와 메간 디 스탤리온 BTS랑 작업했네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와 내가 좋아하는 뉴 호프 클럽이 BTS 노래를 커버하다니! 조용히 유튜브 구독자 수를 비교해보자 K팝 오타쿠들만 좋아한다는 구질구질한 말은 삼키고 그들이 어느 공연장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는지를 검색해보자 물론 익숙하지 않으니 쉽지가 않다 하지만 우리도 의연해져야 한다 BTS는 K팝 아이돌이지만 K팝 아이돌이 아니다 이제 그만 놓아주는 연습을 하자

지인의 노트 2021.08.29

오마이걸의 운명 같은 'Destiny'는 필연적인 결과다. ‘다섯번째 계절’

종종 새삼스럽게 한국어와 한국의 멋이 얼마나 뻐렁치는지 호들갑을 떨게 될 때가 있다. 오마이걸의 노래를 들으면서 알 수 없는 울컥함을 느낀다면 공감할 것이다. 다섯번째 계절 역시 그런 곡이다. 뭔지 모를 이상한 향수를 자아내고, 조선시대의 10대 여성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그려지는 것만 같다. https://youtu.be/X72HgBrMccc 피리, 태평소 같은 관악기 빠방하게 넣고 편곡해도 너무 좋을 것 같다. 다섯번째 계절을 듣다 보면 오마이걸이 러블리즈의 'Destiny(나의 지구)'를 발돋음 삼아 정상에 오른 건 필연적인 결과라는 걸 알 수 있다. 자신들이 해온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분명히 파악한 사람은 결국 기회를 잡는다. (S.E.S.를 좋아했다면 오마이걸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어. 정확히..

지인의 감상 202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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