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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노트 25

토론토까지 흘러온 부산의 파도

‘난 세이수미의 복잡함이 좋아. 밝은 소리 안에 그들만의 씁쓸한 슬픔이 있거든. 난 서울에서, 강원도에서, 그리고 오늘 토론토에서 세이수미의 공연을 봤어.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정말 멋졌고 오늘은 나에게 꽤나 의미있는 날이었어.’ 오랜만에 세이수미(Say Sue Me)의 공연을 본 후 달뜬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에 흔적을 남겼다. 항상 지나친 국뽕이나 의무감에 휩싸인 애국심은 경계하려고 하는데, 토론토에서 만난 부산의 밴드를 보며 피어오르는 자랑스러움은 쉬이 누를 수가 없었다. 다양한 것이 읽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건 항상 묘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수미님의 표정이 그랬다. 아직까지 그날의 뭉글뭉글한 마음이 선명한 걸 보니 그 여운이 오랫동안 자리할 것 같다. 마야와 서투른 언어로 ..

한국인이라는 스펙트럼

토론토에 다녀오고 나서야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한국인이냐 아니냐'가 '참이냐 거짓이냐' 수준의 간단한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오히려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스펙트럼에 가까웠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한국인 혹은 한국계 캐나다인을 만날수록 내가 얼마나 국적과 정체성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해왔는지를 반성하게 됐다. 예전의 나는 아직까지도 '단일민족', '한민족' 등을 운운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컸다.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정체화하지도 않으며 한국어를 거의 못 하는 한국계 프랑스인 정치인을 ‘프랑스의 첫 한국인 정치인’이라고 칭하는 게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에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국적이 한국이 아니면 외국인이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게 쿨한 건 줄 ..

이제 그만 BTS를 K팝 아이돌이라 여기지 말자

그들은 K팝 아이돌이지만 K팝 아이돌이 아니다 이제 그만 놓아주는 연습을 하자 우와 Megan Thee Stallion이랑 작업했네라고 생각하지 말자 우와 메간 디 스탤리온 BTS랑 작업했네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와 내가 좋아하는 뉴 호프 클럽이 BTS 노래를 커버하다니! 조용히 유튜브 구독자 수를 비교해보자 K팝 오타쿠들만 좋아한다는 구질구질한 말은 삼키고 그들이 어느 공연장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는지를 검색해보자 물론 익숙하지 않으니 쉽지가 않다 하지만 우리도 의연해져야 한다 BTS는 K팝 아이돌이지만 K팝 아이돌이 아니다 이제 그만 놓아주는 연습을 하자

지인의 노트 2021.08.29

자 절하고

“자 절하고” 한결 같은 큰아빠의 목소리에 절을 한 번. 다른 사람들이 일어서는 소리가 들릴 즈음에 후다닥 일어선다. 잠시 제사상을 바라보다가 다시 또 절을 한 번. 아직도 일어나기 적당한 타이밍을 찾기가 영 어려워 귀를 쫑긋 세운다. 그 시절 큰집의 안방에는 머리가 하얗게 새지 않은 우리 아빠, 항상 대학생일 것만 같았던 사촌오빠, 여전히 애기 같지만 정말 애기였던 사촌동생, 사실은 제사가 미치도록 지루했던 어린 나, 그리고 내 기억 속에 항상 같은 얼굴을 하고 계시는 큰아빠가 있다. 제사상 위의 사진으로밖에 만나뵙지 못한 할머니, 새벽의 전화는 좋은 소식이 아니란 걸 알게해준 할아버지, 이제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외할아버지, 수업이 끝나면 병원에 가 찾아 뵈었던 외할머니, 갑작스럽게 ..

지인의 노트 2021.06.28

<선택은 네 몫이야>

이미 한 번 다른 사람과 착각했거나 아니면 저번에 마주쳤을 때 일부러 모른 척을 했거나. 나는 의식적으로 눈 앞의 얼굴을 두 어 차례 확인한 후에야 인사를 건넸다. 아마 후자였을 것 같은데, 그 꿈을 꾸던 당시에도 두 가지 상황 중 하나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지인아 너는 이전에 다른 사람이랑 착각을 했거나 아니면 일부러 주영언니를 한 차례 모르는 척 했었어. 선택은 네 몫이야.” 그 선택을 앞에 두고 어떤 목소리가 상황을 설명해줬다. 그건 분명 나였는데, 주영언니에게 다 들리도록 입을 열고 줄줄 읊는 건 아니었다. 내 꿈을 전지적 시점에서 이야기해주는 또다른 나 정도? 그 때는 굉장히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 같아서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라고 싶다. 그걸 내가 어떻게 선택할 수 있고 ..

지인의 노트 2021.04.05

<지인은 아빠와 대화하고 싶었다>

지인은 아빠한테 왓챠플레이와 스트리밍이라는 개념을 알려주고 싶었다. -요새는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봐 -음악 스트리밍 알아? 그거처럼 인터넷만 있으면 걔네가 보유한 영화를 다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요새 잠도 안 자고 영화만 보잖아 -지인아! 밤을 새는 건 정말로 위험한 일이야! -응 알아 -일찍 자! -영화 보는 게 더 재밌어 -밤에 잠을 안 자면 어떡하니! -.......

지인의 노트 2021.04.05

<미안해 선생님은 못 하겠어>

verse 1. 선생님이 좋아하는 노래 중에 '순간에 바로 서서'라는 곡이 있어요. 처음에는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랑 기타소리가 너무 좋아서 가사보단 소리에 집중해서 들었어. 그러다가 어느 순간 '순간에 바로 선다'는 가사가 되게 와닿더라구. 순간에 바로 선다는 게 뭘까?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마주한다는 거잖아. 근데 내가 하루를 살면서 순간에 바로 설 수 있는 시간, 바로 서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싶은 거야. 아무 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시간은 흐르니까 당연히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잖아. 그렇지만 불안하거나 후회되는 게 많으면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어렵거든. 과거에 했던 일을 후회하면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걱정하면서 정작 지금 당장 마주하는 기쁨을 놓치거나 중요한 ..

지인의 노트 2021.04.05

<지인은 도라이 지망생?>

너무 떨어서 제대로 말을 못 했다. 민선언니한테 '사람들이 나를 사가지 없는 도라이로 생각할 거야'라고 문자를 보냈다. 연희한테도 같은 말을 했는데, 연희는 태연하게 '도라이는 맞잖아.'라고 답했다. 사실 연희도 나를 도라이라고 생각할 줄은 몰랐다. 왜 나를 도라이 같다고 생각했을까? 도라이로 사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빼어난 도라이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 도라이이고 싶어하는 도라이지망생 정도?

지인의 노트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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